융합적 탐구의 유용성
본문1952년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연구실에서 찍은 'X선 사진 51번'에는 DNA 분자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에는 가운데가 비고 X 모양으로 늘어선 얼룩무늬만 있다. 그런데 왓슨과 크릭은 이 사진을 보고 DNA가 이중 나선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물리학자가 만든 X선 회절 기술, 화학자가 잰 염기의 비율, 생물학자의 유전 물질 문제가 어떻게 한 사진 위에서 만났을까? 얼룩의 모양에서 나선의 크기까지 읽어 낼 수 있을까?
1.1.1회절 무늬는 모양의 그림자이다
빛이나 X선이 규칙적으로 늘어선 구조를 지나면, 여러 곳에서 흩어진 파동이 겹쳐 어떤 방향에서는 세지고 어떤 방향에서는 사라진다. 그래서 스크린에는 구조의 모양을 반영한 무늬가 생긴다. 이 무늬를 회절 무늬라 한다. 간격이 촘촘한 구조일수록 무늬는 넓게 퍼지고, 간격이 넓은 구조일수록 무늬는 좁게 모인다. 그리고 비스듬히 기운 줄무늬에서 나온 회절 무늬는 그 줄에 수직인 방향으로 늘어선다.
나선을 옆에서 보면 서로 반대로 기운 두 줄무늬가 겹친 모양이다. 그래서 회절 무늬는 두 줄무늬에 각각 수직인 두 팔이 엇갈린 X 모양이 된다. 가닥이 가로 방향과 이루는 각을 \(\alpha\)라 하면, 한 바퀴의 길이 \(P\)와 지름 \(D\) 사이에 \(\tan\alpha = \dfrac{P}{\pi D}\)가 성립하고, X의 팔은 세로축과 \(\alpha\)를 이룬다. 가로 줄의 간격은 \(P\)에 반비례한다.
그림 1에서 한 바퀴의 길이를 바꾸어 보자. DNA의 값인 3.4 nm에서는 \(\tan\alpha = 3.4 \div 6.28 \approx 0.54\)이므로 가닥이 약 28° 기울고, X의 팔도 세로축과 약 28°를 이룬다. 한 바퀴를 6 nm로 늘리면 가닥이 가팔라져 X가 더 벌어진다. 즉 사진 속 X의 각도와 줄 간격만 재면, 분자를 직접 보지 않고도 나선의 지름과 한 바퀴의 길이를 계산할 수 있다.1
1.1.2여러 분야가 한 사진 위에서 만났다
사진 한 장만으로는 이중 나선을 완성할 수 없었다. 나선이라는 것은 물리학의 회절 이론이 알려 주었고, 아데닌과 티민, 구아닌과 사이토신의 양이 서로 같다는 사실은 샤가프의 화학 분석이 알려 주었다. 그리고 염기가 수소 결합으로 짝을 이룬다는 생각은 화학 결합의 지식에서 나왔다. 그래서 왓슨과 크릭은 이 세 단서를 금속 막대 모형 위에서 맞추어 보았고, 모든 단서와 어긋나지 않는 구조가 이중 나선이었다.
1.1.3예제 풀이
어떤 나선 섬유의 X선 사진에서 X의 팔이 세로축과 약 45°를 이루었다. 나선의 지름이 2 nm라면 한 바퀴의 길이는 대략 몇 nm인가? 또 한 바퀴 안에 염기 쌍이 10개 있다면 이웃한 염기 쌍 사이의 거리는 얼마인가?
X의 팔이 세로축과 이루는 각이 곧 \(\alpha\)이므로 \(\tan 45° = 1 = \dfrac{P}{\pi \times 2}\)이다. 따라서 \(P = 2\pi \approx 6.3\) nm이다.
한 바퀴에 염기 쌍이 10개이면 이웃한 쌍 사이의 거리는 \(6.3 \div 10 \approx 0.63\) nm이다. 실제 DNA는 한 바퀴가 3.4 nm이고 염기 쌍 사이가 0.34 nm라서, 사진의 X는 이보다 좁게 벌어진다. 이 계산에는 회절의 물리, 나선의 기하, 염기의 화학이 모두 들어 있다. 그래서 한 분야의 도구가 다른 분야의 문제를 만나면, 혼자서는 보이지 않던 답이 드러난다.
아래 탐구 카드에서 X선 사진 속 무늬를 직접 읽어 보고, 여러 분야가 함께 풀어 낸 다른 문제들도 살펴보자.
- 프랭클린은 사진의 줄 간격에서 한 바퀴 길이 3.4 nm와 염기 쌍 간격 0.34 nm를 계산해 두었다. 이 자료가 동의 없이 왓슨에게 전해진 일은 지금도 연구 윤리의 사례로 이야기된다.
나선의 회절 무늬는 서로 반대로 기운 두 줄무늬의 무늬가 겹친 X 모양이며, X의 각도와 줄 간격에서 나선의 지름과 한 바퀴 길이를 계산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물리의 단서가 화학의 염기 비율, 생명과학의 질문과 만나 이중 나선 모형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처음 질문의 얼룩 사진은 나선의 모양을 회절의 언어로 담고 있었고, 다른 분야의 단서와 합쳐질 때 DNA의 구조를 알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