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교과서

중세 유럽·중동의 과학

‘알고리즘’과 ‘대수(algebra)’는 9세기 바그다드의 한 수학자에게서 나온 말입니다. 그리스의 책들은 아랍어로 옮겨져 연구되고 고쳐진 뒤 다시 라틴어로 유럽에 돌아갔습니다. 중세는 과학이 멈춘 시대였을까요?

먼저 알면 좋은 것 이차방정식과 완전제곱식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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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중동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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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에서 일하던 알콰리즈미는 이렇게 물었다. "어떤 수의 제곱에 그 수의 열 배를 더하면 39가 된다. 그 수는 얼마인가?" 그때는 x도, 등호도, 근의 공식도 없었다. 그는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을 그려 답을 찾았다. 그림만으로 어떻게 방정식을 풀었을까? 그리고 중세 이슬람 세계는 왜 과학의 중심지가 되었을까?

그림 1. \(x^2 + bx = c\)를 넓이로 나타냈다. 정사각형 \(x^2\)(파랑) 옆에 \(\frac{b}{2}x\) 막대 두 개(주황)를 붙이고, 빈 모서리 \((\frac{b}{2})^2\)(빨강)를 채우면 큰 정사각형이 된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차방정식과 완전제곱식(수학),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의 넓이, 그리스 과학(고대 그리스의 과학).

1.3.1넓이로 푸는 방정식

알콰리즈미는 '제곱'을 한 변이 x인 정사각형의 넓이로, '열 배'를 가로 10, 세로 x인 직사각형의 넓이로 보았다. 그는 직사각형을 반으로 잘라 가로 5, 세로 x인 막대 두 개로 만들고, 정사각형의 두 변에 하나씩 붙였다. 그러면 모양은 큰 정사각형에서 한 귀퉁이가 빠진 꼴이 되고, 넓이는 39이다. 빠진 귀퉁이는 한 변이 5인 정사각형으로 넓이 25이다.

정리 1.3.1 완전제곱의 방법

\(x^2 + bx = c\)에서 양변에 \(\left(\dfrac{b}{2}\right)^2\)을 더하면 \[\left(x + \frac{b}{2}\right)^2 = c + \left(\frac{b}{2}\right)^2\] 이 되어, \(x = \sqrt{c + \left(\frac{b}{2}\right)^2} - \dfrac{b}{2}\)이다.

빠진 귀퉁이 25를 채우면 큰 정사각형의 넓이는 \(39 + 25 = 64\)이고, 한 변은 8이다. 큰 정사각형의 한 변은 \(x + 5\)이므로 \(x = 3\)이다. 그림 1에서 \(b\)와 \(c\)를 바꾸어 보자. 같은 방법으로 늘 답을 찾을 수 있다. 그가 쓴 책 이름의 '알자브르'(복원)에서 대수학을 뜻하는 algebra가, 그의 이름에서 algorithm이 나왔다.1

1.3.2중세 이슬람과 유럽의 과학

8~13세기 아바스 왕조는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을 세우고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의 책을 아랍어로 번역했다. 인도에서 온 0과 자리값 기수법을 받아들여 계산이 쉬워졌고, 이븐 알하이삼은 실험으로 빛이 눈으로 들어와 물체를 본다는 것을 밝혔다. 메카의 방향과 기도 시간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종교적 필요가 천문학과 삼각법을 발전시켰다. 이 지식은 12세기 이후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의 대학과 과학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

분야인물업적 대수학알콰리즈미이차방정식의 체계적 풀이 광학이븐 알하이삼빛과 시각, 실험적 방법 의학이븐 시나『의학 정전』, 유럽에서 수백 년 교과서
그림 2. 번역과 종합, 실험으로 중세 이슬람 세계는 과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1.3.3예제 풀이

예제 1.3.2

알콰리즈미의 방법으로 \(x^2 + 6x = 40\)을 풀어라. 빠진 귀퉁이의 넓이, 큰 정사각형의 넓이와 한 변을 차례로 구하여라. 이 방법으로는 음수인 답이 나오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막대는 가로 3, 세로 x인 것 두 개이고, 빠진 귀퉁이는 \(3 \times 3 = 9\)이다. 큰 정사각형의 넓이는 \(40 + 9 = 49\), 한 변은 7이다. 그래서 \(x + 3 = 7\), 곧 \(x = 4\)이다. 확인하면 \(16 + 24 = 40\)이다.

그런데 \((x + 3)^2 = 49\)에서 \(x + 3 = -7\), 곧 \(x = -10\)도 답이다. 알콰리즈미는 길이와 넓이로 생각했으므로 음수인 길이는 다루지 않았다. 즉 그림은 생각을 분명히 보여 주지만, 그 틀 밖의 답은 보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수학은 그 뒤 기호와 음수를 받아들이며 더 넓어졌다.

아래 탐구 카드에서 그림만으로 이차방정식을 풀어 보고, 중세의 종교와 문화가 과학을 어떻게 키웠는지, 15세기 조선이 하늘과 비를 잰 까닭을 살펴보자.

  1. 알콰리즈미는 방정식을 모두 글로 썼다. '제곱과 근 열 개가 39 디르함과 같다'처럼 말이다. 문자와 기호로 쓰는 오늘날의 방식은 16~17세기 유럽에서 자리 잡았다.
마무리

알콰리즈미는 \(x^2 + bx\)를 정사각형과 막대의 넓이로 보고, 빠진 귀퉁이 \((\frac{b}{2})^2\)을 채워 큰 정사각형을 만드는 완전제곱의 방법으로 이차방정식을 풀었다. 중세 이슬람 세계는 번역과 종합, 실험으로 과학의 중심지가 되어 유럽에 지식을 전했다. 그래서 처음 질문의 답은 '그렇다'이다. 기호 없이도 넓이 그림만으로 \(x^2 + 10x = 39\)의 답 3을 찾을 수 있다.

탐구 1

기호 없이 그림만으로 이차방정식을 풀 수 있을까?

이슬람 과학 · 알콰리즈미의 정사각형 완성

알콰리즈미는 기호를 쓰지 않고 “제곱과 근 10개가 39와 같다”처럼 말로 문제를 적었다. 그림은 길이 비례를 지켜 그렸다. 근이 무리수인 경우는 소수 둘째 자리까지 나타낸다.

  1. 질문820년 무렵 바그다드의 알콰리즈미는 “제곱 하나와 그 근 10개를 더하면 39가 된다. 근은 얼마인가?”라는 문제를 풀었다. x, =, √ 같은 기호가 아직 없던 때, 그는 무엇으로 답을 확신했을까?
  2. 복원한 변이 a인 정사각형의 넓이는 a²이고, (a + k)² = a² + 2ak + k²이다. 넓이가 S인 정사각형의 한 변은 √S이다.
  3. 설명미지수 x를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x²)에 넓이 10x인 막대를 붙인다. 막대를 넷으로 나누어 네 변에 붙이면 십자 모양이 되고, 네 모서리에 한 변 10/4인 작은 정사각형을 채우면 큰 정사각형이 된다. 큰 정사각형의 넓이는 39 + 4 × (2.5)² = 64이므로 한 변은 8이고, x = 8 − 2 × 2.5 = 3이다. 기하학의 증명이 계산 절차의 근거가 된 것이다.
  4. 연결그의 책 제목에 있는 알자브르(al-jabr, 복원)는 빼진 항을 반대편으로 옮겨 ‘복원’하는 조작이고, 이것이 algebra(대수학)가 되었다. 그의 이름이 라틴어로 Algoritmi로 옮겨지면서 ‘알고리즘’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는 인도에서 온 0을 포함한 자리값 숫자 체계를 소개하는 책도 썼고, 이 숫자가 유럽에 퍼져 오늘의 ‘아라비아 숫자’가 되었다.
  5. 적용세 예제를 차례로 풀어 보자. 막대를 넷으로 나눌 때와 둘로 나눌 때 채워야 할 모서리 넓이의 합은 같은가? b와 c를 바꾸어 x가 자연수가 되는 조합을 하나 더 찾아보자.
  6. 판단오늘의 근의 공식으로 x² + 10x = 39를 풀면 x = 3과 x = −13이 나온다. 그림으로는 길이가 음수인 변을 그릴 수 없으므로 알콰리즈미는 양의 근만 답으로 삼았다. 음수 근을 근으로 받아들인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림 증명은 직관적이지만, 다룰 수 있는 문제의 범위를 제한하기도 했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알콰리즈미의 둘째 방법(막대를 둘로 나누어 두 변에 붙이기)으로 “제곱과 근 8개가 20과 같다(x² + 8x = 20)”를 풀 때, 채워야 할 모서리 정사각형의 넓이와 답 x는?

읽기 2

종교와 문화는 중세의 과학을 어떻게 키웠을까?

읽기 · 번역 운동 · 이슬람 과학 · 수도원과 대학

중세를 ‘과학의 암흑기’라고 부르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 바그다드와 카이로, 코르도바에서는 천문대와 도서관이 번성했고, 유럽에서는 대학이 생겨났다. 이 시대의 과학을 움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

1바그다드의 번역 운동

8~10세기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그리스어, 시리아어,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문헌을 아랍어로 옮기는 번역 운동이 일어났다. 칼리프 알마문(재위 813~833년) 때 ‘지혜의 집’을 중심으로 학자들이 모였고, 아리스토텔레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갈레노스의 책이 번역되었다. 8세기 중엽 중국에서 전해진 제지술로 종이가 값싸게 만들어진 것도 책의 보급을 도왔다.

이슬람 학자들은 번역에 그치지 않았다. 알콰리즈미는 대수학을 체계화했고, 이븐 시나(980~1037년)의 『의학 정전』은 유럽 대학에서 수백 년 동안 의학 교과서로 쓰였다. 13세기의 마라가 천문대와 15세기 사마르칸트의 울루그 베그 천문대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관측값을 새로 재고 그의 모형의 약점을 고치려 했다.

2신앙이 던진 수학 문제

이슬람의 종교 생활은 정밀한 계산을 요구했다.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시각은 해의 위치로 정해지고, 기도할 때는 메카 방향(키블라)을 향해야 한다. 둥근 지구 위 두 지점 사이의 방향을 구하려면 구면 삼각법이 필요했고, 이 분야가 크게 발전했다. 라마단의 시작을 알리는 초승달 관측, 복잡한 상속 몫의 계산도 천문학과 대수학의 동기가 되었다.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부활절 날짜를 계산하는 일(콤푸투스)이 천문학과 역법 연구를 이어 가게 했다.

3이븐 알하이삼과 어두운 방

카이로에서 활동한 이븐 알하이삼(965~1040년 무렵)은 『광학의 서』에서 눈에서 빛이 나가 물체를 본다는 고대의 생각을 비판하고, 물체의 각 점에서 나온 빛이 곧게 나아가 눈에 들어와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은 구멍이 뚫린 어두운 방에서 바깥 등불들의 빛이 각각 구멍을 지나 맞은편 벽에 따로 맺히고, 등불 하나를 가리면 그 점만 사라진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주장마다 조건을 바꾸어 확인하는 그의 방법은 뒤에 유럽의 광학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등불 A등불 B 작은 구멍 A의 상B의 상
어두운 방(카메라 오브스큐라)의 원리를 그린 모식도이다. 위쪽 등불의 빛은 아래쪽에, 아래쪽 등불의 빛은 위쪽에 맺혀 상이 뒤집힌다.

4유럽, 수도원에서 대학으로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 서유럽에서는 많은 그리스 문헌이 잊혔지만, 수도원은 남은 라틴어 책을 베껴 보존했다. 12세기에 에스파냐의 톨레도와 시칠리아 등에서 아랍어 문헌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이슬람 학자들의 성과가 유럽에 들어왔다. 이 무렵 볼로냐, 파리, 옥스퍼드에 대학이 세워져 자연철학이 정규 교육 과정이 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그리스도교 신학을 조화시켰고, 14세기 파리의 뷔리당과 오렘은 운동을 계속하게 하는 ‘임페투스’ 개념과 운동을 그래프처럼 나타내는 방법을 연구했다. 중세의 학자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중세 이슬람 세계·유럽
탐구의 동기자연을 이해하려는 철학적 호기심신앙과 실생활의 필요(기도 시각, 방향, 역법, 의학), 신의 창조를 이해하려는 뜻
중심지아테네의 학원,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바그다드의 지혜의 집, 천문대, 병원 / 수도원, 대학
지식 다루기새 이론을 세우고 서로 논쟁고전을 번역·주석하고, 관측과 계산으로 오류를 고침
새로운 것공리적 증명, 기하학적 우주 모형대수학, 인도에서 온 자리값 숫자의 보급, 삼각법, 실험 광학, 병원 제도, 대학

판단‘중세 = 암흑기’라는 표현은 서유럽의 일부 시기만 본 것이다. 또 이슬람 세계를 그리스 지식을 맡아 두었다가 돌려준 ‘보관소’로만 보는 것도 틀린 생각이다. 번역된 지식은 고쳐지고 확장된 뒤에 전해졌다. 다만 종교가 늘 과학을 도운 것만도 아니다. 종교적 권위가 특정 학설을 금지하거나 학자를 억압한 일도 있었으므로, 사례마다 따져 보아야 한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이븐 알하이삼의 어두운 방에서 구멍을 점점 크게 넓히면 벽에 맺힌 상은 어떻게 될까?

읽기 3

15세기 조선은 왜 하늘과 비를 재는 데 힘을 쏟았을까?

읽기 · 세종 시대의 과학 기술

사마르칸트에서 울루그 베그가 천문대를 짓던 1420~1440년대, 조선의 한양에서도 천문 관측대와 물시계, 해시계가 잇달아 만들어졌다. 이 시기 조선의 과학은 무엇을 목표로 했을까?

1하늘을 살펴 때를 알리다

유교 정치에서 왕은 하늘의 움직임을 살펴 백성에게 정확한 때를 알려 주어야 했다(관상수시). 날짜와 절기가 틀리면 농사를 그르치고, 일식을 예측하지 못하면 왕의 권위가 흔들렸다. 그런데 중국의 역법은 중국의 수도를 기준으로 계산되어 한양에서는 해 뜨는 시각이나 일식의 시각이 맞지 않았다.

세종(재위 1418~1450년)은 학자들에게 중국 원나라의 수시력과 이슬람 천문학을 바탕으로 한 회회력을 연구하게 했고, 그 결과 1442년에 한양을 기준으로 해와 달, 다섯 행성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칠정산』 내편과 외편이 완성되었다. 경복궁에는 간의대를 쌓고 간의, 혼천의, 규표 같은 관측 기구를 두었다.

2시간과 비를 재다

기구만든 때무엇을 재었나원리
앙부일구1434년시각과 절기솥 모양 오목한 반구 안에 비친 영침(바늘)의 그림자 끝. 세로로 그은 시각선으로 시각을, 가로로 그은 절기선으로 절기를 읽음
자격루1434년밤낮의 시각물이 일정하게 흘러드는 통에서 떠오르는 잣대가 쇠구슬을 굴려, 인형이 종·북·징을 쳐서 시각을 스스로 알림. 장영실 등이 제작
측우기1441년강우량같은 규격의 원통을 여러 고을에 두고 고인 빗물의 깊이를 재어 보고. 땅에 스며든 깊이로 재던 방식보다 객관적
수표1441년하천의 물 높이청계천 등에 눈금을 새긴 기둥을 세워 수위를 읽음

측우기에서 가장 큰 일은 표준화였다. 같은 크기의 그릇으로 같은 방식으로 재야 여러 지역의 비를 비교하고 해마다 기록을 쌓을 수 있다. 이렇게 모인 강우 기록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에 드는 체계적 강수 관측 자료이다. 현재 남아 있는 측우기는 1837년에 만든 공주 감영 측우기이다.

3우리 땅에 맞는 지식

세종 때에는 우리 땅의 농법을 모은 『농사직설』(1429년), 우리 땅에서 나는 약재로 병을 다스리는 『향약집성방』(1433년), 동아시아 의서를 모은 『의방유취』(1445년)가 편찬되었다. 훗날 허준이 완성한 『동의보감』(1610년 완성, 1613년 간행)은 이 전통을 이어 동아시아 의학을 정리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중국의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 땅과 하늘에 맞게 다시 잰다’는 생각이 이 시기 과학 기술을 꿰뚫고 있다.

이슬람 세계세종 시대 조선
과학을 이끈 문화기도 시각, 메카 방향, 라마단 등 신앙생활의 필요하늘의 뜻을 살펴 백성에게 때를 알리는 유교적 왕도 정치
후원자칼리프와 군주(지혜의 집, 천문대)왕과 국가 기관(집현전, 서운관)
외래 지식의 수용그리스·인도·페르시아 문헌의 번역중국의 수시력과 이슬람의 회회력 연구

판단“세종 때 조선의 과학이 세계 최고였다”는 식의 순위 매기기는 근거를 대기 어렵고, 과학사를 경쟁으로만 보게 만든다. 이 시기 조선의 성과는 외래 지식을 깊이 소화해 자기 땅의 기준으로 다시 세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 이 과학은 국가가 필요로 한 실용 지식이 중심이었고, 자연의 원리를 수학적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방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도 함께 보아야 한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고을마다 크기가 다른 그릇을 측우기로 썼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그릇은 모두 위아래 굵기가 같은 원통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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