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신념과 세계관
본문젊은 케플러는 신이 우주를 아름다운 수학으로 설계했다고 굳게 믿었다. 당시 알려진 행성은 여섯 개였고, 정다면체는 정확히 다섯 개뿐이다. 그는 행성 궤도의 구 사이에 정다면체 다섯 개를 하나씩 끼워 넣으면 행성의 거리가 설명된다고 생각했다. 이 아름다운 생각은 맞았을까? 과학자의 믿음은 발견을 이끌었을까, 가렸을까?
1.5.1『우주의 신비』
1596년 케플러는 『우주의 신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토성 궤도의 구 안에 정육면체를 넣고, 그 안에 접하는 구가 목성 궤도이며, 그 안에 정사면체, 다시 화성 궤도, 정십이면체, 지구, 정이십면체, 금성, 정팔면체, 수성의 순서로 끼워진다는 것이다. 행성이 여섯 개인 까닭은 정다면체가 다섯 개뿐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정다면체에 안접하는 구와 외접하는 구의 반지름 비는 정육면체와 정팔면체가 \(\frac{1}{\sqrt{3}} \approx 0.577\), 정사면체가 \(\frac{1}{3}\), 정십이면체와 정이십면체가 약 0.795이다. 케플러의 모형에서는 이 비가 이웃한 행성의 궤도 반지름 비가 되어야 한다.
그림 1에서 행성 쌍을 바꾸어 보자. 토성과 목성 사이(정육면체)는 예측 0.577, 실제 0.545로 6% 차이이다. 화성과 지구 사이(정십이면체)는 예측 0.795, 실제 0.658로 20% 넘게 차이 난다. 당시의 관측 정밀도로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더 정확한 자료 앞에서는 맞지 않았다.1
1.5.2믿음과 증거
케플러는 자기 모형을 확인하려고 티코 브라헤의 정밀한 관측 자료를 얻었다. 그런데 화성의 궤도를 원으로 맞추려 하자 관측과 8분(0.13°)이 어긋났다. 그는 '신이 주신 이 8분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며 원 궤도를 버리고 타원 궤도를 찾아냈다. 우주가 수학적으로 조화롭다는 믿음은 그를 끈질기게 탐구하게 했지만, 그 믿음의 특정한 형태인 정다면체와 원 궤도는 증거 앞에서 버려야 했다.
1.5.3예제 풀이
정육면체의 한 변을 2라 하자. 안접구의 반지름은 1(면까지의 거리), 외접구의 반지름은 꼭짓점까지의 거리이다. 외접구의 반지름과 두 구의 반지름 비를 구하여라. 목성(5.20 AU)과 토성(9.54 AU)의 실제 비와 비교하여라.
꼭짓점은 중심에서 \((1, 1, 1)\)만큼 떨어져 있으므로 외접구의 반지름은 \(\sqrt{1^2 + 1^2 + 1^2} = \sqrt{3} \approx 1.732\)이다. 반지름 비는 \(\dfrac{1}{\sqrt{3}} \approx 0.577\)이다.
실제 비는 \(\dfrac{5.20}{9.54} \approx 0.545\)로, 예측과 약 6% 차이 난다. 케플러 시대의 관측으로는 행성 거리에 몇 %의 오차가 있었으므로 그럴듯해 보였다. 그런데 천왕성이 1781년에 발견되면서 행성이 여섯 개라는 전제부터 무너졌다. 즉 아름다운 설명이라도 새로운 증거와 맞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래 탐구 카드에서 정다면체로 행성의 거리를 직접 계산해 보고, 과학자의 믿음이 발견을 이끌었는지 가렸는지 토론해 보자.
- 케플러는 정다면체 모형을 끝내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정다면체가 아니라, 정밀한 자료와 끈질기게 씨름하여 찾은 행성 운동의 세 법칙이다.
케플러는 우주가 수학적으로 조화롭다는 믿음에서 정다면체로 행성 거리를 설명하려 했지만, 예측은 실제 궤도 비와 수 %에서 20%까지 어긋났다. 같은 믿음이 그를 정밀한 자료와 씨름하게 하여 타원 궤도와 세 법칙을 찾게 했다. 그래서 처음 질문의 답은 '아니다'이다. 정다면체 모형은 증거와 맞지 않았지만, 그 뒤의 믿음과 끈기가 더 큰 발견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