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교과서

과학자의 신념과 세계관

케플러는 신이 기하학자라고 믿었고, 그 믿음으로 행성 궤도의 법칙을 찾아냈습니다. 같은 믿음이 틀린 우주 모형을 붙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자의 신념은 과학을 앞으로 밀까요, 뒤로 당길까요?

먼저 알면 좋은 것 케플러 법칙플라톤의 정다면체가설과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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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신념과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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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케플러는 신이 우주를 아름다운 수학으로 설계했다고 굳게 믿었다. 당시 알려진 행성은 여섯 개였고, 정다면체는 정확히 다섯 개뿐이다. 그는 행성 궤도의 구 사이에 정다면체 다섯 개를 하나씩 끼워 넣으면 행성의 거리가 설명된다고 생각했다. 이 아름다운 생각은 맞았을까? 과학자의 믿음은 발견을 이끌었을까, 가렸을까?

그림 1. 이웃한 두 행성 궤도 사이에 정다면체를 끼울 때 예측되는 반지름 비(정다면체에 안접하는 구 ÷ 외접하는 구, 위)와 실제 궤도 반지름 비(아래). 대체로 비슷하지만 몇 % 이상 차이가 난다.
먼저 알아야 할 것케플러 법칙(역학과 에너지), 플라톤의 정다면체(수학), 가설과 검증, 과학혁명(르네상스와 과학혁명).

1.5.1『우주의 신비』

1596년 케플러는 『우주의 신비』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토성 궤도의 구 안에 정육면체를 넣고, 그 안에 접하는 구가 목성 궤도이며, 그 안에 정사면체, 다시 화성 궤도, 정십이면체, 지구, 정이십면체, 금성, 정팔면체, 수성의 순서로 끼워진다는 것이다. 행성이 여섯 개인 까닭은 정다면체가 다섯 개뿐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정리 1.5.1 정다면체의 안접구와 외접구

정다면체에 안접하는 구와 외접하는 구의 반지름 비는 정육면체와 정팔면체가 \(\frac{1}{\sqrt{3}} \approx 0.577\), 정사면체가 \(\frac{1}{3}\), 정십이면체와 정이십면체가 약 0.795이다. 케플러의 모형에서는 이 비가 이웃한 행성의 궤도 반지름 비가 되어야 한다.

그림 1에서 행성 쌍을 바꾸어 보자. 토성과 목성 사이(정육면체)는 예측 0.577, 실제 0.545로 6% 차이이다. 화성과 지구 사이(정십이면체)는 예측 0.795, 실제 0.658로 20% 넘게 차이 난다. 당시의 관측 정밀도로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더 정확한 자료 앞에서는 맞지 않았다.1

1.5.2믿음과 증거

케플러는 자기 모형을 확인하려고 티코 브라헤의 정밀한 관측 자료를 얻었다. 그런데 화성의 궤도를 원으로 맞추려 하자 관측과 8분(0.13°)이 어긋났다. 그는 '신이 주신 이 8분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며 원 궤도를 버리고 타원 궤도를 찾아냈다. 우주가 수학적으로 조화롭다는 믿음은 그를 끈질기게 탐구하게 했지만, 그 믿음의 특정한 형태인 정다면체와 원 궤도는 증거 앞에서 버려야 했다.

믿음결과 우주는 수학적으로 조화롭다평생 수학적 규칙을 찾게 함 → 세 법칙 발견 정다면체가 궤도를 정한다정밀한 자료와 맞지 않아 버려짐 궤도는 완전한 원이다8분의 오차로 버리고 타원을 찾음
그림 2. 믿음은 탐구의 방향을 주었고, 증거는 믿음의 내용을 고치게 했다.

1.5.3예제 풀이

예제 1.5.2

정육면체의 한 변을 2라 하자. 안접구의 반지름은 1(면까지의 거리), 외접구의 반지름은 꼭짓점까지의 거리이다. 외접구의 반지름과 두 구의 반지름 비를 구하여라. 목성(5.20 AU)과 토성(9.54 AU)의 실제 비와 비교하여라.

꼭짓점은 중심에서 \((1, 1, 1)\)만큼 떨어져 있으므로 외접구의 반지름은 \(\sqrt{1^2 + 1^2 + 1^2} = \sqrt{3} \approx 1.732\)이다. 반지름 비는 \(\dfrac{1}{\sqrt{3}} \approx 0.577\)이다.

실제 비는 \(\dfrac{5.20}{9.54} \approx 0.545\)로, 예측과 약 6% 차이 난다. 케플러 시대의 관측으로는 행성 거리에 몇 %의 오차가 있었으므로 그럴듯해 보였다. 그런데 천왕성이 1781년에 발견되면서 행성이 여섯 개라는 전제부터 무너졌다. 즉 아름다운 설명이라도 새로운 증거와 맞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래 탐구 카드에서 정다면체로 행성의 거리를 직접 계산해 보고, 과학자의 믿음이 발견을 이끌었는지 가렸는지 토론해 보자.

  1. 케플러는 정다면체 모형을 끝내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정다면체가 아니라, 정밀한 자료와 끈질기게 씨름하여 찾은 행성 운동의 세 법칙이다.
마무리

케플러는 우주가 수학적으로 조화롭다는 믿음에서 정다면체로 행성 거리를 설명하려 했지만, 예측은 실제 궤도 비와 수 %에서 20%까지 어긋났다. 같은 믿음이 그를 정밀한 자료와 씨름하게 하여 타원 궤도와 세 법칙을 찾게 했다. 그래서 처음 질문의 답은 '아니다'이다. 정다면체 모형은 증거와 맞지 않았지만, 그 뒤의 믿음과 끈기가 더 큰 발견을 이끌었다.

탐구 1

정다면체 다섯 개로 행성의 거리를 설명할 수 있을까?

과학자의 신념 · 케플러의 『우주의 신비』
거리 비의 평균 어긋남
—
120가지 순서 가운데 순위
—
토성 궤도 (예측 / 실제)
—

정다면체에 외접하는 구와 내접하는 구의 반지름 비는 정사면체 3, 정육면체·정팔면체 √3 ≈ 1.732, 정십이면체·정이십면체 ≈ 1.258. 실제 값은 행성 궤도의 긴반지름(AU)이다. 이 카드는 평균 거리의 비만 비교한 단순화이며, 케플러는 궤도의 두께(이심률) 등을 넣어 더 맞추려 했다. 왼쪽 그림의 반지름은 로그 눈금이다.

  1. 질문1596년, 25세의 케플러는 『우주의 신비』에서 “왜 행성은 여섯 개이고, 왜 그 거리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했다고 믿었다. 그의 답은 정다면체였다. 이 생각은 얼마나 맞았을까?
  2. 복원모든 면이 합동인 정다각형이고 꼭짓점마다 모이는 면의 수가 같은 볼록 입체, 정다면체는 정확히 다섯 가지뿐이다. 플라톤은 이것들을 우주의 원소와 연결했다.
  3. 설명케플러는 신이 우주를 기하학으로 설계했다고 믿었다. 정다면체가 다섯 개이니 그 사이에 끼울 구는 여섯 개, 그래서 행성도 여섯 개라는 것이다. 수성의 구에 정팔면체를 외접시키고, 그 정팔면체에 외접하는 구를 금성의 구로 삼는 식으로 정이십면체, 정십이면체, 정사면체, 정육면체를 차례로 끼웠다.
  4. 연결이 모형은 틀렸지만, 신의 설계에는 정확한 수학 법칙이 있다는 믿음 때문에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의 관측과 8′(0.13°)의 차이도 넘기지 않았다. 그 끈기로 타원 궤도 법칙(1609년)과 조화의 법칙 T² ∝ a³(1619년)을 찾았다. 신념이 잘못된 모형과 올바른 법칙을 함께 낳은 셈이다.
  5. 적용‘케플러의 순서’를 눌러 어긋남을 보자. 다른 순서로 바꾸면 더 잘 맞출 수 있는가? ‘120가지 순서 모두 조사’로 케플러의 순서가 몇 번째인지 확인해 보자. 평균 10%의 어긋남을 ‘일치’로 볼지 ‘불일치’로 볼지는 무엇에 달려 있을까?
  6. 판단가능한 경우가 120가지나 되므로, 그중 가장 잘 맞는 것이 10% 안팎으로 맞는다고 해서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고르는 경우가 많을수록 그럴듯한 일치는 쉽게 찾아진다. 결정적으로 1781년 일곱째 행성 천왕성이 발견되자 ‘다섯 입체, 여섯 행성’이라는 이 모형의 핵심이 무너졌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어떤 학생이 행성 거리 비를 설명하는 새 규칙을 찾았다며, 수학 상수 30개 가운데 다섯 개를 골라 순서대로 놓았더니 실제 비와 평균 5% 안으로 맞았다고 발표했다. 가장 적절한 반응은?

읽기 2

과학자의 믿음은 발견을 이끌었을까, 가렸을까?

읽기 · 과학자의 신념과 세계관 사례

과학자는 증거만 따르는 사람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질문을 던질지, 어떤 답을 ‘아름답다’고 느낄지, 예상과 다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는 그 사람이 가진 세계관이 스며든다. 역사 속 사례에서 믿음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1믿음이 질문을 만든 경우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 모형의 이퀀트(행성의 각속도가 일정해 보이는 가상의 점)가 천체는 균일한 원운동을 한다는 원칙을 어긴다고 보았다. 우주는 조화롭고 단순해야 한다는 믿음이 태양 중심 모형을 찾게 한 동기 가운데 하나였다.

패러데이는 자연의 여러 힘이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전기와 자기, 빛 사이의 연결을 끈질기게 찾았고, 1831년 전자기 유도를, 1845년에는 자기장이 빛의 편광 방향을 돌리는 현상을 발견했다.

홍대용(1731~1783년)은 『의산문답』에서 지구가 하루에 한 번 돌고 우주는 끝이 없다고 주장했다. 끝없는 우주에는 정해진 중심이 없으므로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도 상대적이라고 했다. 천문학의 우주관이 사회를 보는 세계관과 서로 맞물린 사례이다.

2믿음이 증거를 가린 경우

갈릴레이는 자연이 수학의 언어로 쓰였다고 믿었고 이 믿음은 근대 과학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원운동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에 머물러 케플러의 타원 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구의 운동으로 밀물과 썰물을 설명하려 했으나 이 설명은 틀렸다.

아인슈타인은 자연이 결정론적이라고 믿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양자 역학의 확률적 해석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우주가 변하지 않는다고 보아 1917년 일반 상대성 이론에 우주 상수를 넣었고, 우주 팽창이 관측된 뒤 이를 거두어들였다.

리센코는 1930~1960년대 소련에서 획득 형질이 유전된다고 주장하며 멘델 유전학을 ‘부르주아 과학’이라고 공격했다. 정치 권력이 그를 지지하자 반대한 유전학자들이 쫓겨나거나 투옥되었고(바빌로프는 1943년 감옥에서 숨졌다), 농업 정책은 큰 실패를 겪었다. 이념이 과학 공동체의 검증을 막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여 준다.

과학자신념·세계관이끈 것가린 것
케플러신은 기하학으로 우주를 설계했다정밀한 수학 법칙을 끝까지 찾음 → 케플러 법칙정다면체 우주 모형
갈릴레이자연은 수학의 언어로 쓰였다실험과 수학을 결합한 운동 연구타원 궤도 거부, 틀린 조석 이론
뉴턴우주의 질서는 신의 설계하늘과 땅을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태양계 안정성에 신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봄
아인슈타인자연은 결정론적이고 단순하다상대성 이론양자 역학의 확률 해석 거부

3사례를 조사해 발표하기

먼저 과학자 한 명과 그가 만든 지식 하나를 고른다. 다음으로 그 사람의 신념이나 세계관을 1차 자료(편지, 저서의 문장)로 확인한다. 이어서 그 신념이 어떤 질문, 가설, 판단 기준에 영향을 주었는지 찾는다. 그리고 결국 무엇이 그 지식을 받아들이게 하거나 버리게 했는지(증거, 예측, 공동체의 검토)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오늘날의 문제에 적용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하고 토론한다.

판단신념이 없는 과학자는 없고, 신념 자체가 과학을 망치는 것도 아니다. 과학 철학에서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과정(발견의 맥락)과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근거(정당화의 맥락)를 나누어 본다. 발견은 종교적 믿음이나 미적 감각에서 나올 수 있지만, 받아들여지려면 다른 사람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와 예측을 통과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신념이 이 검증 과정을 대신하거나 막을 때이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리센코의 주장이 정치적 지지 없이, 다른 학자들이 자유롭게 반박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나왔다면 어떻게 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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