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교과서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1610년,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금성이 달처럼 차고 기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양 하나가 1400년 동안 이어진 지구 중심 우주를 흔들었습니다. 같은 시대 화가들은 수학으로 깊이를 그렸고, 해부학자들은 화가와 함께 몸속을 그렸습니다.

먼저 알면 좋은 것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모형달의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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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과학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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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갈릴레이는 막 만든 망원경을 금성으로 돌렸다. 금성은 달처럼 모양이 바뀌었는데, 초승달 모양일 때는 크고, 보름달 모양일 때는 작았다. 이 관측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1400년 된 프톨레마이오스의 모형에 큰 타격을 주었다. 금성의 모양과 크기가 어떻게 우주 모형을 가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이 시기 유럽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났을까?

그림 1. 태양 중심 모형에서 금성의 위치(왼쪽)와 지구에서 본 모습(오른쪽).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있을 때는 크고 가는 초승달, 태양 너머에 있을 때는 작고 둥근 보름달 모양이다.
먼저 알아야 할 것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모형, 달의 위상(지구과학), 닮음과 비례, 중세 과학(중세 유럽·중동의 과학).

1.4.1두 우주 모형의 예측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모형에서 금성은 늘 지구와 태양 사이에서 작은 원(주전원)을 그리며 돈다. 그래서 금성은 늘 태양보다 가까이 있고, 지구에서는 햇빛을 받는 면의 일부만 보여 언제나 초승달이나 그믐달 모양이어야 한다. 반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모형에서 금성은 태양 둘레를 돌므로, 태양 너머에 있을 때는 햇빛 받는 면을 거의 다 보여 둥근 모양이 된다.

정리 1.4.1 결정적 관측

금성이 보름달에 가까운 위상까지 모든 위상을 보이고, 둥글 때 작고 가늘 때 크다는 것은 금성이 태양 둘레를 돌아 태양 너머로도 간다는 뜻이다. 이는 지구 중심 모형의 예측과 맞지 않는다.

그림 1에서 금성의 위치를 바꾸어 보자. 지구에 가장 가까울 때는 거리가 0.28 AU, 가장 멀 때는 1.72 AU로 겉보기 크기가 약 6배 차이 난다. 갈릴레이는 이 변화를 관측했다. 다만 지구가 멈춰 있고 다른 행성이 태양을 도는 티코 브라헤의 모형도 금성의 위상을 설명할 수 있어, 논쟁은 케플러와 뉴턴에 이르러서야 끝났다.1

1.4.2과학혁명과 르네상스

16~17세기 유럽에서는 인쇄술로 책과 관측 자료가 빠르게 퍼졌고, 대항해 시대의 항해술과 렌즈를 깎는 기술이 발달했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원근법으로 평평한 벽에 깊이를 그렸는데, 이는 빛이 눈으로 곧게 들어오는 기하학이었다. 장인의 손기술과 학자의 수학이 만나며, 자연을 관측과 실험, 수학으로 설명하는 근대 과학이 태어났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으로 이어진 이 변화를 과학혁명이라 한다.

모형금성의 위치보이는 위상 지구 중심 (프톨레마이오스)늘 지구와 태양 사이초승·그믐달 모양만 태양 중심 (코페르니쿠스)태양 둘레, 너머까지모든 위상, 크기 변화
그림 2. 두 모형은 금성의 위상에 대해 서로 다른 예측을 한다.

1.4.3예제 풀이

예제 1.4.2

금성의 궤도 반지름은 0.723 AU, 지구는 1 AU이다. 금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울 때와 가장 멀 때의 거리를 구하고, 겉보기 지름의 비를 구하여라. 가장 가까울 때 금성은 어떤 모양으로 보이는가?

가장 가까울 때는 금성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있어 \(1 - 0.723 = 0.277\) AU, 가장 멀 때는 태양 너머에 있어 \(1 + 0.723 = 1.723\) AU이다. 겉보기 지름은 거리에 반비례하므로 비는 \(\dfrac{1.723}{0.277} \approx 6.2\)배이다.

가장 가까울 때 금성은 햇빛을 받는 면을 지구 반대쪽으로 향하고 있어 거의 보이지 않거나 아주 가는 초승달 모양이다. 그러다 멀어지며 점점 둥글어지고 작아진다. 즉 '크면 가늘고, 작으면 둥글다'는 한 가지 관측이 금성이 태양을 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이 증거를 망원경이라는 새 도구가 드러냈다.

아래 탐구 카드에서 금성의 모양으로 우주 모형을 가르고, 시계 없이 낙하 법칙을 찾은 실험과 원근법의 원리를 살펴보자.

  1. 갈릴레이는 발견을 먼저 차지하려고 '사랑의 어머니(금성)가 신시아(달)의 모양을 흉내 낸다'는 라틴어 문장의 글자를 뒤섞은 수수께끼를 케플러에게 보냈다.
마무리

지구 중심 모형에서 금성은 늘 초승달 모양이어야 하지만,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금성이 모든 위상을 보이고 가늘 때 크고 둥글 때 작다는 것을 관측했다. 이는 금성이 태양을 돈다는 증거였고, 인쇄술, 기술, 예술과 수학이 만난 과학혁명의 상징적 장면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 질문의 답은 '그렇다'이다. 금성의 위상과 크기 변화는 두 우주 모형 가운데 지구 중심 모형을 버리게 했다.

탐구 1

금성의 모양 하나로 우주 모형을 가를 수 있을까?

과학혁명 · 금성의 위상과 겉보기 크기
이각 (태양–지구–금성)
—
밝은 부분의 비율
—
겉보기 지름
—

코페르니쿠스·티코 모형은 실제 궤도 반지름(지구 1 AU, 금성 0.723 AU)과 원 궤도를 썼고, 겉보기 지름은 실제 금성 지름 12,104 km로 계산했다. 프톨레마이오스 모형은 최대 이각 46°를 맞추도록 거리를 정한 모식이며, 겉보기 지름은 상대값이다. 그래프의 점선은 이 모형이 한 회합 주기 동안 그리는 모든 경우이다.

  1. 질문금성은 언제나 해 근처에서만 보인다(최대 이각 약 46°). 지구 중심 모형과 태양 중심 모형은 둘 다 이 사실을 설명했다. 두 모형이 서로 다른 예측을 하는 관측은 없을까?
  2. 복원달의 위상은 태양 빛을 받는 반쪽 가운데 지구에서 보이는 부분이 달라져 생긴다. 천체가 태양 반대편 쪽에서 우리를 향하면 보름, 태양과 우리 사이에 있으면 삭(그믐)이다.
  3. 설명프톨레마이오스 모형에서 금성은 지구와 태양 사이에 놓인 주전원 위를 돌며, 주전원의 중심은 늘 지구와 태양을 잇는 선 위에 있다. 그래서 금성은 언제나 태양보다 가까이 있어, 우리는 주로 금성의 어두운 쪽을 본다. 초승달 모양과 삭만 보이고, 보름에 가까운 모양은 나타날 수 없다. 태양 중심 모형에서는 금성이 태양 너머로 가기도 하므로 작은 보름 모양부터 큰 초승달 모양까지 모든 위상이 나타난다.
  4. 연결1610년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금성이 작고 둥근 모양에서 크고 가는 초승달 모양으로 바뀌는 것을 관측했다. 이 관측은 프톨레마이오스 모형과 맞지 않았다. 같은 해 그는 목성 둘레를 도는 위성 넷도 발견해, 모든 천체가 지구 둘레를 돈다는 생각에 반례를 보탰다.
  5. 적용세 모형을 바꾸며 재생해 보자. 밝은 부분의 비율이 0.5를 넘는 때가 있는 모형은 무엇인가? 금성이 가장 크게 보일 때 모양은 어떤가? 코페르니쿠스 모형과 티코 브라헤 모형의 망원경 그림을 비교해 보자.
  6. 판단금성의 위상은 프톨레마이오스 모형을 반박했지만, 태양 중심설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지구는 멈춰 있고 태양이 지구를, 행성들이 태양을 도는 티코 브라헤의 모형도 똑같은 위상을 예측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직접 증거(별의 연주 시차)는 1838년에야 측정되었다. 한 관측이 한 모형을 버리게 할 수는 있어도, 남은 모형 가운데 하나를 골라 주지는 않는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망원경으로 화성을 보면 늘 보름에 가깝고(밝은 부분 85% 이상), 이각이 180°(태양 반대편)인 때도 있다. 이 관측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탐구 2

시계 없이 낙하 법칙을 찾을 수 있을까?

실험 · 갈릴레이의 빗면 · d ∝ t²
기울기 d/t² (m/s²)
—
가속도 a = 2·기울기
—
결정계수 R²
—

물시계는 1초에 물 25 g이 흐른다. 저울 눈금은 0.5 g이고, 손으로 마개를 여닫는 데 ±0.05초쯤 오차가 생긴다. 기울기를 바꾸면 기록을 새로 시작한다.

  1. 탐구 문제갈릴레이 시대에는 초 단위를 잴 시계가 없었고, 자유 낙하는 너무 빨라 눈으로 따라갈 수도 없었다. 떨어지는 물체의 속력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할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대로 무거운 정도에 따라 일정한 속력으로 떨어질까?
  2. 복원속력이 일정하면 간 거리는 시간에 비례한다(d ∝ t). 그런데 속력이 시간에 비례해 늘어나면(등가속도) 평균 속력이 at/2이므로, 거리는 d = ½at²으로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
  3. 설계그래서 갈릴레이는 낙하를 묽게 만들었다. 완만한 빗면에서는 같은 운동이 느려져 잴 수 있게 된다. 시간은 큰 물통 바닥 구멍에서 흘러나온 물의 질량으로 쟀다. 조작 변인은 거리 d, 종속 변인은 시간 t, 통제 변인은 빗면 기울기와 공이다.
  4. 분석이렇게 잰 d-t 그래프는 위로 휘어진다. 그런데 가로축을 t²으로 바꾸면 점들이 원점을 지나는 직선에 놓이고, 이 직선의 기울기가 ½a이다. “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갈릴레이의 결론이 바로 이 직선이다.
  5. 측정거리를 0.5 m부터 4 m까지 바꿔 가며 재고, 가로축을 t²으로 바꿔 보자. 다음에는 기울기를 6°로 올려 가속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고, 기울기가 클수록 측정이 어려워지는 까닭도 생각해 보자.
  6. 오차·안전짧은 거리일수록 마개를 여닫는 반응 시간 오차가 잰 시간에 비해 커서 점이 크게 흩어진다. 그래서 갈릴레이는 같은 측정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고 썼다. 또 구르는 공의 가속도는 회전 때문에 g sinθ보다 작은 5/7 g sinθ이지만, d ∝ t²이라는 규칙은 그대로이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같은 빗면에서 공이 처음 1초 동안 0.2 m 굴렀다. 처음 3초 동안에는 얼마나 구를까?

탐구 3

화가는 평평한 벽에 어떻게 깊이를 그렸을까?

과학과 예술 · 선 원근법과 중심 투영
지평선의 높이 (화면 위)
—
첫째 줄과 다섯째 줄 타일의 그림 속 깊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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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선이 모이는 점 ↔ 소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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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타일은 한 변 1 m, 기둥은 높이 2 m, 화면(그림의 평면)은 너비 4 m이다. 화면 위 점은 눈에서 물체로 그은 직선이 화면과 만나는 점이다(중심 투영).

  1. 질문중세의 그림 속 건물과 바닥은 어딘가 기울어 보인다. 15세기 피렌체의 화가와 건축가들은 같은 크기의 기둥이 멀어질수록 얼마나 작아져야 하는지 계산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2. 복원닮은 삼각형에서는 대응하는 변의 길이 비가 같다. 빛은 곧게 나아가므로, 눈에 들어오는 빛은 물체의 각 점에서 눈까지 그은 직선을 따라 온다.
  3. 설명그림을 눈과 장면 사이에 세운 유리창이라고 생각한다. 물체의 각 점에서 눈으로 가는 직선이 유리창을 지나는 점을 찍으면 그것이 그림입니다(중심 투영). 닮음에 따라 거리 z에 있는 길이 L은 화면에서 L × f/z로 줄어든다(f: 눈과 화면 사이 거리). 그래서 화면에 수직인 평행선들은 모두 눈높이의 지평선 위 한 점, 소실점에 모인다.
  4. 연결브루넬레스키는 1415년 무렵 피렌체 세례당 그림과 거울로 이 원리를 시연했다고 전해지고, 알베르티는 『회화론』(1435년)에서 그리는 방법을 정리했다.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1420년대 후반)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1490년대)은 이 방법으로 그린 대표작이다. 화면 속 기하학은 뒤에 사영 기하학이라는 수학으로 발전했고, 오늘날 컴퓨터 그래픽과 카메라의 원리도 같다.
  5. 적용눈높이를 바꾸면 지평선은 어디로 가는가? ‘줄 간격을 같게’를 고르고 타일의 대각선을 켜 보자. 대각선이 곧게 이어지는가? 눈과 화면 사이 거리를 바꾸며 대각선이 모이는 점이 소실점에서 얼마나 떨어지는지 재어 보자.
  6. 판단원근법 그림은 정해진 한 점에서 한쪽 눈으로 볼 때만 정확하다. 다른 자리에서 보면 형태가 일그러지며, 화면 가장자리의 둥근 물체는 옆으로 늘어나 보인다. 또 중세 화가들이 원근법을 ‘몰라서 틀렸다’고만 볼 수도 없다. 중요한 인물을 크게 그리는 것처럼, 그들은 다른 목적에 맞는 다른 규칙으로 그렸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사진가가 바닥에 엎드려(눈높이 약 0.3 m) 긴 복도를 찍었다. 서서 찍은 사진과 비교할 때 사진 속 바닥은 어떻게 보일까?

읽기 4

과학혁명은 왜 16~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났고, 예술과는 어떻게 만났을까?

읽기 · 과학혁명의 사회문화적 배경 · 과학과 예술의 융합

1543년 한 해에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와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이다. 하나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렸고, 다른 하나는 1300년 동안 권위였던 갈레노스의 해부학을 고쳤다. 왜 이 무렵이었을까?

1사회문화적 배경

변화과학에 준 영향
인쇄술 (1450년 무렵 구텐베르크)같은 그림과 표를 수백 부 똑같이 찍어, 관측 자료와 해부도를 여러 학자가 비교하고 고칠 수 있게 됨
인문주의와 고전의 재발견그리스어 원전을 직접 읽으며 고대 학설끼리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됨. 권위를 비교하고 따지는 태도
대항해 시대정확한 항해를 위해 천문학, 지도, 시계가 필요해짐. 고대 문헌에 없던 땅과 생물이 알려지며 옛 지식의 한계가 드러남
종교 개혁 (1517년~)하나의 권위에 대한 의문이 커짐. 한편 교회와 국가의 검열도 심해짐
장인과 학자의 만남렌즈 장인의 기술로 망원경(1608년 무렵 네덜란드)과 현미경이 만들어지고, 학자가 이를 관측 도구로 씀
후원과 학회메디치 가문 같은 후원자, 런던 왕립 학회(1660년)와 파리 과학 아카데미(1666년), 학술지의 등장으로 결과를 공개하고 검증하는 제도가 생김

2지구 중심에서 만유인력까지

코페르니쿠스(1543년)는 태양을 중심에 놓아 행성의 역행과 순서를 간단히 설명했지만, 원 궤도를 고집해 예측 정확도는 프톨레마이오스 모형과 비슷했다. 티코 브라헤는 망원경 없이 당시 가장 정밀한 행성 관측을 남겼고, 케플러는 그 자료로 행성이 타원 궤도를 돈다는 것을 밝혔다(1609년).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달의 산, 목성의 위성, 금성의 위상을 관측하고(1609~1610년), 빗면 실험으로 낙하 법칙을 찾았다. 뉴턴은 『프린키피아』(1687년)에서 운동 법칙과 만유인력으로 하늘과 땅의 운동을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했다.

3과학과 예술이 만난 자리

선 원근법은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가 기하학으로 정리한 중심 투영이다. 화가는 수학을, 수학자는 그림을 공부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직접 해부한 관찰을 바탕으로 근육, 뼈, 심장 판막, 자궁 속 태아를 그렸고, 물의 흐름과 새의 비행도 그림으로 연구했다. 그의 해부 그림은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다.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는 직접 해부한 결과를 정밀한 목판화로 실었다. 그림은 베네치아의 화가들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이 곧 증거였다.

그림과 원근법에 밝았던 갈릴레이는 달의 밝고 어두운 경계에 생긴 빛점과 그림자를 산과 골짜기로 해석해 그렸다. 명암으로 입체를 읽는 화가의 눈이 관측의 해석에 쓰였다.

뒤러는 『측정술 교본』(1525년)에서 격자를 댄 틀을 통해 대상을 보고 옮겨 그리는 원근 기계를 소개했다.

판단‘과학혁명’이라는 이름은 짧은 기간에 모든 것이 바뀐 것처럼 들리게 한다. 실제로는 150년에 걸친 변화였고, 케플러는 점성술 달력을 만들었고 뉴턴은 연금술을 깊이 연구했다. 옛 생각과 새 생각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었다. 또 그림이 과학을 도왔다고 해서 모든 과학 그림이 정확했던 것도 아니다. 베살리우스의 그림에도 오류가 있었고, 그림을 다시 관찰과 비교해 고치는 과정이 과학을 앞으로 나가게 했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인쇄술이 없어서 모든 책을 손으로 베껴야 했다면, 티코 브라헤의 관측 표가 여러 학자에게 전해지는 데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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