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교과서

감염병과 사회

1854년 런던에서는 몇 블록 안에서 열흘 만에 500명이 넘게 죽었습니다. 의사 존 스노는 사망자의 주소를 지도에 찍어 원인을 찾아 나갔습니다. 감염병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고, 과학은 무엇으로 맞섰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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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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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여름, 런던 소호 지역에서 열흘 만에 500명 넘게 콜레라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사람들은 콜레라가 썩은 공기, 곧 '나쁜 기운'으로 퍼진다고 믿었다. 세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의사 존 스노는 사망자의 집을 지도에 하나하나 찍어 보다가 다른 원인을 의심했다. 그는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증거를 모았을까?

그림 1. 1854년 런던에서 물 공급 회사에 따른 1만 가구당 콜레라 사망자 수(스노의 조사). 오염된 템스강 하류에서 물을 끌어온 회사의 가구가 상류에서 끌어온 회사의 가구보다 약 8배 많이 죽었다.
먼저 알아야 할 것병원체와 면역, 백신과 집단 면역(생명과학), 상관과 인과(통계), 예술 속 과학(예술·건축 속 과학 원리).

2.4.1지도와 펌프

스노가 사망자의 집을 지도에 찍자, 브로드 스트리트의 공용 물 펌프 둘레에 점이 몰려 있었다. 펌프에서 멀어도 사망자가 나온 집을 찾아가 보니 그 펌프의 물맛이 좋아 일부러 길어다 먹은 집이었다. 반대로 펌프 바로 곁의 맥주 공장 노동자들은 거의 죽지 않았는데, 공장 안의 우물물과 맥주만 마셨기 때문이었다. 스노가 펌프 손잡이를 떼어 내자고 설득한 뒤 새 환자가 줄었다.

정리 2.4.1 자연 실험과 인과 추론

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인만 다르고 나머지 조건은 비슷한 두 집단을 비교하면, 직접 실험하지 않고도 인과 관계를 추론할 수 있다. 이를 자연 실험이라 한다. 상관만으로는 인과를 단정할 수 없으므로, 다른 설명을 하나씩 배제하는 증거를 모은다.

스노는 더 큰 증거도 찾았다. 런던 남부의 같은 거리에서 이웃한 집들이 서로 다른 두 회사에서 물을 받고 있었다. 사는 곳, 공기, 생활 수준은 비슷한데 물만 달랐다. 그림 1에서 회사를 바꾸어 보자. 오염된 하류 물을 쓴 집은 1만 가구당 315명, 상류 물을 쓴 집은 37명이 죽었다. '나쁜 공기'로는 이웃한 집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다.1

2.4.2감염병과 사회

스노의 조사는 콜레라가 오염된 물로 퍼진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런던은 하수도를 새로 놓고 강물을 거르는 상수도를 갖추었다. 감염병은 늘 사회를 바꾸어 왔다. 14세기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를 앗아가 노동력과 사회 구조를 흔들었고, 천연두 백신과 항생제는 평균 수명을 크게 늘렸다. 최근의 코로나19는 백신 개발의 속도와 함께 정보 공유와 개인 정보 보호 사이의 균형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다른 설명배제한 증거 나쁜 공기같은 거리 이웃집도 물에 따라 사망률이 달랐다 가난, 생활 수준두 회사 고객의 생활 수준이 비슷했다 펌프와의 거리 자체멀어도 그 물을 마신 집에서 사망
그림 2. 다른 설명을 하나씩 배제하며 물이 원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4.3예제 풀이

예제 2.4.2

스노의 자료에서 사우스워크·복스홀 회사 고객 40 046가구 가운데 1263명이, 램버스 회사 고객 26 107가구 가운데 98명이 콜레라로 죽었다. 두 회사의 1만 가구당 사망자 수와 그 비를 구하여라. 이 비교가 '자연 실험'인 까닭을 설명하여라.

사우스워크·복스홀은 \(\dfrac{1263}{40\,046} \times 10\,000 \approx 315\)명, 램버스는 \(\dfrac{98}{26\,107} \times 10\,000 \approx 38\)명이다. 비는 \(\dfrac{315}{38} \approx 8.3\)배이다.

두 회사의 수도관은 같은 거리에 뒤섞여 들어가 있어, 고객이 어느 회사를 고를지 사는 곳이나 생활 수준과 거의 관계없었다. 그래서 두 집단은 물만 다르고 나머지는 비슷한, 마치 일부러 나눈 실험군과 대조군 같았다. 따라서 사망률의 8배 차이는 물의 차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사람을 대상으로 위험한 실험을 할 수 없을 때, 자연이 만든 비교를 찾아 인과를 추론할 수 있다.

아래 탐구 카드에서 집단 면역에 필요한 접종률과, 1854년 콜레라의 원인을 지도로 찾는 과정을 따라가 보자.

  1. 같은 해 이탈리아의 파치니는 콜레라 환자의 장에서 쉼표 모양의 세균을 발견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883년 코흐가 콜레라균을 다시 찾아내면서 스노의 결론이 미생물학으로도 확인되었다.
마무리

스노는 사망자 지도와 물 공급 회사별 사망률 비교라는 자연 실험으로, 콜레라가 나쁜 공기가 아니라 오염된 물로 퍼진다는 것을 보였다. 다른 설명을 하나씩 배제하는 증거가 인과 추론을 뒷받침했고, 이는 상하수도 개선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처음 질문의 1854년 런던 콜레라는 오염된 물에서 왔으며, 그 증거는 지도와 숫자로 드러났다.

탐구 1

집단 면역은 몇 %가 접종해야 생길까?

SIR 전염병 모형 · 시뮬레이션
집단 면역 문턱 1 − 1/R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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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중 결국 감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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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접종자 중 결국 감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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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모형으로 계산한 모식이다. 백신 효과를 100%로, 사람들이 고르게 섞인다고 가정했고 앓는 기간은 7일로 두었다. R₀ 값은 연구마다 범위가 있는 대표 추정치이다.

  1. 질문모든 사람이 백신을 맞지 않아도 전염병이 퍼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몇 %가 맞아야 할까?
  2. 복원전염병이 퍼지는지는 감염자 한 명이 평균 몇 명에게 옮기느냐로 정해진다. 아무도 면역이 없을 때의 이 수를 기초 감염 재생산수 R₀라고 하고, 한 명이 한 명보다 많이 옮기면 유행이 커지고, 적게 옮기면 사그라진다.
  3. 설명접종한 사람은 병을 옮겨 받지도, 옮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접종률이 p이면 감염자가 만나는 사람 가운데 1 − p만 감염될 수 있으므로, 한 명이 옮기는 수는 R₀ × (1 − p)로 줄어든다.
  4. 연결따라서 R₀(1 − p) < 1이 되면 유행이 커지지 못한다. 이것을 p에 대해 풀면 p > 1 − 1/R₀이고, 이 값이 집단 면역 문턱이다. 즉 R₀가 클수록 문턱이 높아진다.
  5. 적용‘홍역’을 누르고 접종률을 올려 유행이 거의 사라지는 접종률을 찾아보자. 문턱 바로 아래와 바로 위에서 ‘미접종자 중 결국 감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비교해 보자.
  6. 판단“나 하나쯤 안 맞아도 된다”는 판단은 문턱 근처에서 특히 위험하다. 접종률이 문턱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도 유행이 다시 번지기 때문이다. 또 이 모형은 백신 효과를 100%로, 사람들이 고르게 섞인다고 가정했다. 실제로는 접종률이 낮은 지역이나 모임에 유행이 몰려, 전체 접종률이 문턱을 넘어도 집단 발병이 일어날 수 있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R₀가 약 4인 감염병이 있다. 백신 효과가 100%라면, 집단 면역을 위해 최소 몇 %가 접종해야 할까?

탐구 2

1854년 런던의 콜레라는 어디에서 왔을까?

실제 자료 · 스노의 콜레라 지도 · 역학 조사
반지름 안의 사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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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펌프가 가장 가까운 사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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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578명 중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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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별

실제 자료이다. 사망자 위치와 펌프는 스노의 『콜레라의 전파 방식에 관하여』 2판(1855) 지도를 R. Dodson(NCGIA, 1992)이 디지털화하고 W. Tobler(1994)가 배포한 좌표이며(R 패키지 HistData를 거쳐 받음, 좌표 파일은 GPL-3), 날짜별 수는 같은 책의 표 1이다. 한 집에서 여러 명이 죽으면 지도처럼 길 바깥쪽으로 점을 쌓아 찍었다. 지도 위를 누르면 가장 가까운 펌프를 고른다. 거리는 직선 거리이며, 스노는 실제 걸어가는 길을 따라 거리를 쟀다.

  1. 질문1854년 8월 말, 런던 소호의 몇 블록 안에서 열흘 남짓 동안 500명 넘게 콜레라로 죽었다. 당시 많은 의사는 콜레라가 썩은 냄새 나는 나쁜 공기(미아즈마)로 퍼진다고 믿었다. 의사 존 스노는 물을 의심했다. 지도만으로 원인을 가려낼 수 있을까?
  2. 복원원인을 찾으려면 한 번에 한 요인만 다른 두 집단을 비교해야 한다. 나쁜 공기가 원인이라면 사망자는 냄새가 심한 곳을 따라, 물이 원인이라면 특정 물을 마신 사람을 따라 모여야 한다. 당시에는 집집이 수도가 없어 동네 공공 펌프에서 물을 길어 마셨다.
  3. 설명스노는 사망자의 주소를 하나하나 찾아 지도에 점으로 찍고, 펌프 위치를 함께 그렸다. 사망자는 브로드가 펌프 둘레에 몰려 있었다. 다른 펌프가 더 가까운 집의 사망자도 찾아가 물어보니, 물맛이 좋다며 일부러 브로드가 물을 길어 온 경우가 많았다. 그는 9월 7일 교구 위원회에 증거를 냈고, 다음 날 펌프 손잡이가 떼어졌다.
  4. 연결스노는 이 지도와 함께 더 강한 증거를 모았다. 같은 거리에 섞여 사는 집들 가운데 템스강 하류의 오염된 물을 받는 회사의 고객이 상류에서 물을 끌어오는 회사의 고객보다 약 8배 많이 죽었다. 요인 하나만 다른 두 집단을 비교한, 오늘날 역학(epidemiology)의 기본 방법이다. 콜레라균은 1883년 코흐가 분리해 확인했다.
  5. 적용브로드가 펌프에서 반지름을 2(200 m)로 두고 다른 펌프로 바꿔 보자. 같은 반지름 안의 사망자 수가 얼마나 다른가? ‘구역 나누기’를 켜면 브로드가가 가장 가까운 사망자가 전체의 몇 %인가? 아래 그래프에서 발병이 가장 많았던 날과 손잡이를 뗀 9월 8일을 비교해 보자.
  6. 판단“손잡이를 떼자 유행이 멈췄다”는 이야기는 과장이다. 그래프를 보면 발병은 9월 1일에 가장 많았고, 손잡이를 떼기 전에 이미 줄고 있었다. 많은 주민이 피난을 갔고, 우물의 오염도 줄었을 수 있다. 또 지도에는 동네별 인구(분모)가 없어서, 점이 많은 곳이 단지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일 가능성도 따져야 한다. 지도는 의심을 좁혀 주었고, 결론은 물 회사 비교 같은 다른 증거와 합쳐져 힘을 얻었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브로드가 펌프 바로 옆 맥주 공장의 노동자 약 70명 가운데 콜레라로 죽은 사람이 없었다. 이들은 공장 안의 우물물과 맥주를 마셨다고 한다. 이 사실은 어떤 가설을 가장 강하게 흔드는가?

읽기 3

감염병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고, 과학은 무엇을 해냈을까?

읽기 · 흑사병에서 코로나19까지

2020년 봄, 우리나라 학교는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개학했다. 감염병 하나가 학교, 일터, 여행, 장사의 방식을 한꺼번에 바꾼 것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감염병은 어떻게 사회를 흔들었고, 사람들은 무엇으로 맞섰을까?

1원인을 모를 때, 격리와 희생양

14세기 중엽 유럽을 휩쓴 흑사병(페스트)은 몇 년 사이에 유럽 인구의 약 3분의 1을 앗아 간 것으로 추정된다. 원인 세균은 500년 넘게 지난 1894년에야 발견되었고, 쥐벼룩이 그 세균을 옮긴다는 것도 그 뒤에 알려졌다. 원인을 모르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경험으로 대응했다. 지중해의 항구 도시들은 들어오는 배와 사람을 일정 기간 묶어 두었는데, 이 기간을 가리키던 이탈리아어 ‘40일’(quaranta giorni)이 오늘날 검역(quarantine)이라는 말의 뿌리이다.

원인을 모르는 공포는 엉뚱한 사람을 겨누기도 했다. 흑사병 때 유럽 여러 도시에서는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이 퍼져 학살이 일어났다. 감염병은 의학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문제이다.

2원인을 찾아내다, 콜레라와 세균설

콜레라는 19세기에 인도에서 세계로 여러 차례 퍼졌고, 조선에도 1821년에 들어와 큰 피해를 냈다. 당시 유럽에서는 나쁜 공기(미아즈마)가 병을 옮긴다는 생각이 우세했다. 1854년 런던의 존 스노는 사망자의 주소와 마신 물을 추적해 오염된 물이 원인이라는 증거를 모았다. 이어 파스퇴르와 코흐가 특정한 미생물이 특정한 병을 일으킨다는 세균설을 실험으로 세웠고, 코흐는 1882년 결핵균, 1883년 콜레라균을 찾아냈다.

원인을 알게 되자 도시가 바뀌었다. 런던은 템스강의 악취 사건(1858년) 뒤 도시 아래에 거대한 하수도를 놓았고, 여러 도시가 상수도를 거르고 소독하기 시작했다. 깨끗한 물과 하수 처리는 어떤 약보다 많은 생명을 구한 공중 보건 기술로 꼽힌다.

3막아 내다, 백신과 항생제

천연두는 걸린 사람의 30 % 안팎이 죽는 무서운 병이었다. 1796년 영국의 제너는 소의 천연두(우두)를 앓은 사람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관찰을 바탕으로, 우두를 접종해 천연두를 막는 방법을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석영이 1879년 처음 우두를 접종했고, 이후 『우두신설』(1885)을 써서 종두법을 알렸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이끈 접종 운동 끝에 1980년 천연두는 지구에서 사라졌다고 선언되었다. 사람이 박멸한 첫 감염병이다.

1928년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은 1940년대에 대량 생산되면서 세균 감염으로 죽는 사람을 크게 줄였다. 그러나 항생제를 많이 쓸수록 살아남는 내성균이 늘어, 오늘날 항생제 내성은 다시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다.

1347~흑사병 1796제너 우두 1821조선 콜레라 1854스노 지도 1879지석영 종두 1882~83코흐 세균 발견 1918인플루엔자 대유행 1928페니실린 1980천연두 박멸 2020코로나19
감염병 유행(붉은 점)과 과학의 대응(초록 점). 간격은 실제 연도 비례가 아니다.

420세기와 21세기의 대유행

1918년에 시작된 인플루엔자 대유행은 1차 세계 대전 막바지의 군대 이동을 타고 퍼져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에서도 ‘무오년 독감’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에는 바이러스를 볼 수도, 백신을 만들 수도 없었다.

2020년 3월 WHO가 대유행을 선언한 코로나19 때는 사정이 달랐다. 바이러스의 유전체 서열이 유행 초기에 공개되었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mRNA 백신이 1년이 안 되어 접종에 들어갔다. 유전자 증폭 검사(PCR)로 감염자를 빨리 찾았고, 마스크와 거리 두기 같은 오래된 방법도 함께 쓰였다. 동시에 원격 수업과 재택근무가 퍼지고, 자영업자의 피해와 교육 격차,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같은 사회 문제도 드러났다.

감염병사회에 미친 영향과학과 기술의 대응
흑사병 (14세기)인구 급감, 일손 부족, 희생양 찾기격리와 검역 (원인은 1894년에 밝혀짐)
콜레라 (19세기)도시 위생 문제가 정치 쟁점이 됨역학 조사, 세균설, 상하수도
천연두높은 사망률, 살아남아도 흉터·실명종두법, 세계적 접종으로 1980년 박멸
1918 인플루엔자전쟁 중 대규모 사망원인 바이러스는 1930년대에야 분리
코로나19 (2020~)원격 수업·재택근무, 경제 피해, 혐오유전체 분석, PCR 검사, mRNA 백신

판단“과학이 감염병을 정복했다”는 말은 반만 맞다. 천연두처럼 사람만 걸리고 좋은 백신이 있는 병은 박멸할 수 있었지만, 동물과 사람을 오가는 바이러스나 내성균은 계속 나타난다. 또 과학적 해결책이 있어도 사회가 받아들여야 효과가 난다. 1998년 백신이 자폐를 일으킨다는 논문은 조작으로 드러나 2010년 철회되었지만, 그 뒤에도 접종을 꺼리는 분위기가 남아 일부 나라에서 홍역이 다시 늘었다. 감염병 대응에는 과학 지식과 함께 신뢰, 소통, 공정한 분배가 필요하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천연두는 박멸되었지만 인플루엔자는 박멸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 까닭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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