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기술의 윤리적·사회적 문제
본문2023년 유전자 가위로 겸상 적혈구 빈혈증을 고치는 치료가 처음 승인되었다. 환자의 골수에서 혈액 줄기세포를 꺼내, 유전자 가위로 편집한 뒤 다시 넣는 방법이다. 그런데 유전자 가위는 드물게 목표가 아닌 다른 곳을 자르기도 한다. 세포 하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100만분의 1이라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기술을 누구에게,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누가 어떤 근거로 정해야 할까?
4.4.1작은 확률과 큰 수
유전자 가위는 안내 RNA와 서열이 맞는 곳을 찾아 DNA를 자른다. 그런데 서열이 한두 염기만 다른 곳도 가끔 잘라, 의도하지 않은 돌연변이를 남긴다. 이를 표적 밖 편집이라 한다. 세포 하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아주 작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치료에 쓰는 세포는 수억 개이다. 작은 확률에 큰 수를 곱하면 결과는 작지 않을 수 있다. 위험을 판단하려면 확률 하나가 아니라, 그 확률이 적용되는 횟수와 일어났을 때의 결과를 함께 보아야 한다.
세포 \(n\)개가 각각 독립적으로 확률 \(p\)로 표적 밖 편집을 겪으면, 기댓값은 \(np\)개이고 하나라도 생길 확률은 \(1 - (1-p)^n \approx 1 - e^{-np}\)이다. \(np\)가 1보다 훨씬 크면 표적 밖 편집이 생기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림 1에서 두 값을 바꾸어 보자. 세포마다 100만분의 1의 확률이라도, 1억 개를 편집하면 표적 밖 편집 세포가 약 100개 생긴다. 하나라도 생길 확률은 사실상 100%이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일어나며, 그 세포가 문제를 일으키는가'로 바뀐다. 연구자들은 표적 밖 편집이 일어날 만한 자리를 컴퓨터로 미리 찾아 서열을 읽어 확인하고, 편집한 세포를 오래 지켜본다.1
4.4.2근거로 답하는 윤리
생명공학기술의 윤리 문제는 '해도 되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이 아니다. 효과와 위험을 어떻게 견줄지, 체세포만 바꿀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생식 세포까지 바꿀지, 비싼 치료를 누가 받을 수 있을지, 사회는 어떤 절차로 정할지가 함께 걸려 있다. 체세포 편집은 그 환자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지만, 배아의 편집은 동의할 수 없는 미래 세대의 유전체를 바꾼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는 체세포 치료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허용하고, 사람 배아의 편집으로 아이를 낳는 것은 금지한다. 이런 판단은 감정이 아니라 위험의 크기, 대안의 유무, 영향을 받는 사람의 범위 같은 근거 위에서 내려야 한다.
4.4.3예제 풀이
어떤 유전자 치료에서 세포마다 표적 밖 편집 확률이 \(10^{-6}\)이고, 환자에게 편집한 세포 \(2 \times 10^8\)개를 넣는다. 표적 밖 편집 세포의 기댓값은 몇 개인가? 표적 밖 편집이 암 관련 유전자에 일어날 확률이 그 가운데 1000분의 1이라면, 환자 한 명에게 암 관련 표적 밖 편집 세포가 하나라도 들어갈 확률은 얼마인가?
기댓값은 \(2 \times 10^8 \times 10^{-6} = 200\)개이다. 이 가운데 암 관련 유전자에 일어난 것의 기댓값은 \(200 \times 10^{-3} = 0.2\)개이다.
하나라도 들어갈 확률은 \(1 - e^{-0.2} \approx 0.18\), 곧 약 18%이다. 다만 그런 세포가 들어가도 실제로 암이 되려면 여러 돌연변이가 더 쌓여야 하므로 위험은 이보다 훨씬 작다. 이 숫자를 치료하지 않을 때 환자가 겪는 고통과 수명의 단축과 견주어야 한다. 즉 '100만분의 1'이라는 확률만으로는 위험을 판단할 수 없고, 횟수와 결과, 대안을 함께 따져야 한다. 그래서 규제 기관은 이런 계산과 장기 추적 자료를 근거로 치료를 승인한다.
아래 탐구 카드에서 생명공학기술의 윤리적 쟁점을 골라, 감정이 아니라 근거로 찬반의 주장을 세워 보자.
- 2018년 중국의 한 연구자가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해 쌍둥이를 태어나게 했다고 발표했다. 과학계는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았고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며 강하게 비판했고, 그는 징역형을 받았다.
세포 하나의 표적 밖 편집 확률이 아주 작아도, 수억 개의 세포를 편집하면 기댓값이 커져 표적 밖 편집은 거의 확실히 생긴다. 그래서 위험은 확률, 횟수, 결과의 심각성, 그리고 치료하지 않을 때의 대안을 함께 따져 판단해야 하며, 편집 대상에 따라 영향을 받는 사람과 쟁점이 달라진다. 처음 질문의 '100만분의 1'은 세포 1억 개에 적용되면 작은 위험이 아니라, 그 결과가 어디에 생기는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하는 위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