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교과서

현대 과학과 사회문화

1919년 11월, 영국 신문들은 일식 사진 몇 장을 근거로 “뉴턴의 생각이 뒤집혔다”고 썼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하루아침에 세계적 유명인이 되었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은 실험실 밖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물리학의 변화가 어떻게 사회와 예술까지 흔들었을까요?

본문

현대 과학과 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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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1월 영국 신문들은 "과학의 혁명, 뉴턴의 생각이 뒤집혔다"고 대서특필했다. 그해 5월의 개기 일식 때 찍은 별 사진 몇 장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아인슈타인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가 되었다. 일식 사진은 무엇을 보여 주었을까? 그리고 새로운 과학은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그림 1. 태양 곁을 지나는 별빛이 휘는 각. 일반 상대론은 태양 가장자리에서 1.75초(파랑)를, 빛을 입자처럼 다룬 뉴턴식 계산은 그 절반(주황)을 예측한다. 태양에서 멀수록 휘는 각이 작아진다.
먼저 알아야 할 것특수 상대성 이론, 중력과 만유인력(물리학, 역학과 에너지), 측정의 오차, 과학자의 신념(과학자의 신념과 세계관).

2.1.1휘는 빛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질량은 시공간을 휘게 하고, 빛도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나아간다. 그래서 태양 곁을 지나는 별빛은 태양 쪽으로 조금 휜다. 지구에서 보면 별이 태양에서 조금 바깥쪽으로 밀려난 위치에 보인다. 평소에는 햇빛 때문에 태양 곁의 별을 볼 수 없지만, 개기 일식 때는 낮에도 별이 보인다.

정리 2.1.1 빛의 휨 (태양)

일반 상대론에 따르면 태양 중심에서 태양 반지름의 \(b\)배 거리를 지나는 별빛은 약 \(\dfrac{1.75''}{b}\) 휜다. 빛을 질량 있는 입자로 보고 뉴턴 역학으로 계산하면 그 절반인 약 \(\dfrac{0.87''}{b}\)이다.

1.75초는 1 km 밖에서 본 8 mm 정도의 아주 작은 각이다. 에딩턴의 관측대는 일식 때 별 사진을 찍고, 몇 달 뒤 밤하늘의 같은 별 사진과 비교하여 별의 위치가 얼마나 밀려났는지 쟀다. 결과는 약 1.6~2.0초로, 뉴턴식 값보다 상대론의 값에 가까웠다. 그림 1에서 거리를 바꾸어 보자.1

2.1.2과학과 사회문화

제1차 세계 대전이 막 끝난 때, 영국 과학자가 독일 과학자의 이론을 확인했다는 사실은 화해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말이 유행하여, 과학 이론과 상관없이 예술과 철학, 대중문화에서 절대적인 기준이 흔들리는 시대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오늘날 상대성 이론은 GPS 위성 시계를 보정하는 데 쓰이고, 중력 렌즈로 먼 은하와 암흑 물질을 관측하는 도구가 되었다.

가려진 태양 실제로 보인 위치 (바깥으로 밀림)밤하늘의 원래 위치 별빛 →
그림 2. 태양 곁의 별은 빛이 휘어 원래 위치보다 태양에서 조금 바깥에 보인다.

2.1.3예제 풀이

예제 2.1.2

일식 사진에서 태양 반지름의 2배 거리에 보이는 별이 있다. 일반 상대론과 뉴턴식 계산은 각각 얼마의 휨을 예측하는가? 관측값이 0.90″ ± 0.15″였다면 어느 예측을 지지하는가?

일반 상대론은 \(\dfrac{1.75}{2} \approx 0.88''\), 뉴턴식은 \(\dfrac{0.87}{2} \approx 0.44''\)을 예측한다.

관측값 0.90″의 오차 범위 0.75″~1.05″ 안에 상대론의 예측 0.88″이 들어 있고, 뉴턴식 0.44″는 크게 벗어난다. 그래서 이 관측은 상대론을 지지한다. 다만 1919년의 실제 사진은 흐리고 오차가 커서 결과를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 그 뒤 전파 망원경으로 훨씬 정밀하게 재어 상대론의 예측이 0.1% 수준까지 확인되었다. 즉 한 번의 극적인 관측이 사회를 흔들었지만, 과학적 결론은 반복된 정밀 측정으로 굳어졌다.

아래 탐구 카드에서 상대성 이론이 생활과 사회를 바꾼 방식, 일식 사진이 아인슈타인을 유명하게 만든 과정, 시공간 개념의 변화가 예술에 준 영향을 살펴보자.

  1. 아인슈타인은 1911년에는 뉴턴식 값과 같은 0.87초를 예측했다가, 1915년 일반 상대론을 완성하며 1.75초로 고쳤다. 1914년 일식 관측이 전쟁으로 무산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던 셈이다.
마무리

일반 상대론은 태양 곁을 지나는 별빛이 태양 가장자리에서 1.75초 휜다고 예측했고, 1919년 일식 관측은 뉴턴식 예측의 두 배인 이 값에 가까운 결과를 얻었다. 이 소식은 전쟁 직후의 사회와 문화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래서 처음 질문의 일식 사진 몇 장은 뉴턴의 이론을 넘어서는 새 이론의 예측을 확인했다는 상징이 되어 아인슈타인을 세계적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읽기 1

상대성 이론은 우리 생활과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읽기 · 상대성 이론의 활용과 사회적 영향

상대성 이론은 빛에 가까운 속력이나 아주 강한 중력에서만 필요한 이론처럼 보인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쓰는 기술과 20세기의 역사에도 깊이 스며 있다.

분야상대성 이론과의 관계
위성 항법 (GPS)위성 시계는 빠른 운동 때문에 하루 약 7 μs 늦고, 약한 중력 때문에 약 45 μs 빨라짐. 보정하지 않으면 위치 오차가 하루 10 km 넘게 쌓임 (GPS 시계 카드)
핵에너지E = mc²에 따라 핵분열·핵융합에서 줄어든 질량이 막대한 에너지로 바뀜. 원자력 발전과 함께 핵무기라는 무거운 문제도 낳음
의료PET 검사는 양전자와 전자가 만나 질량이 모두 빛(감마선)으로 바뀌는 현상을 이용. 방사선 치료용 가속기는 빛에 가까운 전자를 다룸
입자 가속기입자가 빛의 속력에 가까워지면 질량 에너지가 커져 가속이 어려워지는 효과를 고려해 설계
천문학중력 렌즈, 블랙홀 영상, 중력파 검출(2015)은 일반 상대성 이론의 예측

상대성 이론은 ‘누구에게나 같은 절대 시간’이라는 오랜 생각을 무너뜨려 철학과 예술,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 1939년 아인슈타인이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알리는 편지에 서명한 일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판단“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유행어는 상대성 이론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상대성 이론은 오히려 빛의 속력과 물리 법칙이 모든 관찰자에게 같다(불변)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과학 개념을 비유로 쓸 때는 원래 뜻을 지켜야 한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GPS 위성 시계를 상대론적으로 보정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탐구 2

일식 사진 몇 장이 어떻게 아인슈타인을 세계적 유명인으로 만들었을까?

현대 과학과 사회 · 1919년 일식 관측 · 모식 재현
태양 가장자리에서의 휨 (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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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식 0.87″과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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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1.75″과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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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식 재현이다. 별의 배치와 측정 오차 크기는 지어낸 값이고, 예측값(뉴턴식 0.87″, 일반 상대성 이론 1.75″, 태양 가장자리 기준)은 실제이다. 1920년 발표된 실제 결과는 소브라우 4인치 망원경 1.98″ ± 0.12″, 프린시페 1.61″ ± 0.30″였다. 각도 1″(초)는 1°의 1/3600이고, 그림의 화살표는 600배 과장했다.

  1. 질문1919년 11월 7일 영국 신문 『타임스』는 “과학의 혁명, 뉴턴의 생각이 뒤집혔다”는 제목을 실었다. 근거는 그해 5월 29일 개기 일식 때 찍은 별 사진이었다. 별 사진이 무엇을 보여 주었기에 신문에 크게 실렸을까?
  2. 복원빛도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면, 태양 가장자리를 스쳐 오는 별빛은 조금 휘고, 별은 원래 자리보다 태양에서 약간 바깥쪽에 보인다. 휘는 각도는 태양 중심에서 멀수록 거리에 반비례해 작아진다. 평소에는 햇빛 때문에 태양 옆의 별을 볼 수 없으므로, 달이 태양을 가리는 개기 일식이 기회이다.
  3. 설명빛을 질량 있는 알갱이로 보고 뉴턴 역학으로 계산하면 태양 가장자리에서 0.87″이다. 1915년 완성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을 시공간의 휘어짐으로 보아 그 두 배인 1.75″를 예측했다. 영국의 에딩턴과 다이슨은 브라질 소브라우와 아프리카 서해안의 프린시페섬에 관측대를 보내, 일식 사진 속 별의 자리를 몇 달 떨어진 밤에 찍은 같은 별들의 자리와 비교했다.
  4. 연결결과는 1919년 11월 6일 런던 왕립 학회와 왕립 천문 학회의 합동 회의에서 발표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1년도 안 되어, 영국 과학자들이 독일에서 일하던 과학자의 이론을 확인했다는 점도 화제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하루아침에 세계적 유명인이 되었고,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생각은 철학, 예술, 대중문화로 퍼졌다.
  5. 적용소브라우에서 건판을 두세 장 재어 태양 가장자리의 휨을 구해 보자. 어느 예측에 가까운가? 프린시페로 바꾸면 불확도는 어떻게 되는가? ‘건판 축척 오차’를 켜고 다시 재면 결론이 어떻게 바뀌는가? ‘축척도 함께 맞추기’를 켜면 무엇이 회복되고, 무엇을 잃는가?
  6. 판단1919년의 측정은 오차가 컸다. 소브라우의 다른 망원경(천체 사진기)은 초점이 흐려진 사진에서 뉴턴식에 가까운 0.93″을 얻었는데, 에딩턴 팀은 이 자료를 계통 오차가 크다며 덜 믿었다. 이 선택이 정당했는지는 지금도 과학사학자들이 논의한다. 결정적인 확인은 그 뒤 여러 번의 일식 관측과 1970년대 이후의 전파 관측에서 왔다. 신문 제목처럼 한 번의 관측이 이론을 ‘증명’하는 일은 드물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어떤 관측대가 태양 중심에서 태양 반지름의 4배 떨어진 별들만 찍을 수 있었다고 하자. 일반 상대성 이론이 맞다면 이 별들은 대략 얼마나 휘어 보일까?

읽기 3

시간과 공간이 바뀌자 예술과 생각도 바뀌었을까?

읽기 · 현대 과학의 등장과 20세기 사회문화

20세기 초 물리학은 두 번 크게 바뀌었다. 상대성 이론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는 절대 시간을 버렸고, 양자 역학은 원자 세계가 확률로만 예측된다고 말했다. 실험실 안의 이 변화가 어떻게 신문, 그림, 철학, 일상의 말에까지 번졌을까?

1사회가 과학에 준 질문, 과학이 사회에 준 답

영향은 한 방향만이 아니었다. 19세기 말 유럽은 철도와 전신으로 연결되면서 멀리 떨어진 도시의 시계를 맞추는 일이 실제 문제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1902년부터 1909년까지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에서 일했는데, 시계 동기화에 관한 발명품이 이 시기 특허 출원에 자주 등장했다. 1905년 특수 상대성 이론 논문은 바로 ‘멀리 떨어진 두 시계를 어떻게 맞추는가’를 따지며 동시성이 관찰자에 따라 달라짐을 보였다. 이 둘을 직접 연결하는 기록은 없지만, 시대의 기술 문제가 과학자의 질문에 스며들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반대로 1919년 일식 관측 발표 뒤에는 과학이 사회로 쏟아져 나왔다. 아인슈타인은 세계를 돌며 강연했고, 신문은 “세상에서 12명만 이해하는 이론” 같은 말로 상대성 이론을 소개했다. 과학자가 대중의 유명인이 된 첫 사례로 꼽힌다.

2예술, 같은 시대의 공기, 다른 출처

20세기 초 화가들도 시간과 공간을 새로 그리려 했다. 다만 작품과 과학의 관계는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예술 흐름·작품무엇을 그렸나과학과의 실제 관계
입체파 (1907년 무렵~, 피카소·브라크)한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본 모습을 한 화면에 겹침당시 유행한 ‘4차원 기하학’ 대중서와 사진의 영향이 거론됨. 상대성 이론이 널리 알려지기(1919) 전에 시작됨
미래주의 (1909년 선언~, 이탈리아)속도, 기계, 움직임을 한 장면에 연속으로 겹쳐 그림자동차·기차·비행기의 속도 경험과 연속 사진(크로노포토그래피)에서 직접 영향을 받음
달리 「기억의 지속」 (1931)녹아내리는 시계흔히 상대성 이론의 시간으로 해석되지만, 달리 자신은 녹는 치즈에서 떠올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짐

그러니 “미래주의 화가들이 상대성 이론을 그렸다”고 말하면 틀린다. 더 정확한 말은 이렇다. 같은 시대에 과학자와 예술가가 모두 ‘관찰자와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문제에 끌렸고, 그 배경에는 빨라진 교통과 사진, 영화 같은 새 기술이 있었다.

1900191019201930 1905 특수 상대성 1915 일반 상대성 1919 일식 관측 발표 1925~27 양자 역학 1907 입체파 1909 미래주의 선언 1931 「기억의 지속」
과학(초록)과 예술(주황)의 사건. 입체파와 미래주의는 상대성 이론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에 시작되었다.

3생각과 말, 오해도 함께 퍼졌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말이 유행하며 도덕이나 진리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주장의 근거처럼 쓰였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의 출발점은 오히려 불변이다. 빛의 속력과 물리 법칙은 모든 관찰자에게 같고, 시간과 길이는 그 불변을 지키기 위해 바뀐다.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도 “무엇이든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정할 수 없다는 정확한 수학적 한계이다.

현대 과학은 무겁고 현실적인 영향도 남겼다.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E = mc²)는 핵분열 연구와 이어져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를 낳았고, 과학자가 연구의 결과에 어떤 책임을 지는가라는 질문을 사회 전체에 던졌다.

4미래주의 작품을 분석하는 방법

  • 작품의 제작 연도와 화가가 쓴 선언문·편지를 먼저 확인한다. 화가가 무엇을 읽고 보았는지가 근거이다.
  • 화면에서 시간의 흐름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겹친 윤곽, 반복된 다리, 사선)를 찾는다.
  • 그 표현이 상대성 이론의 내용(관찰자마다 다른 동시성, 시간 지연)과 같은지, 아니면 ‘움직임의 연속 기록’에 가까운지 비교한다.
  • 비슷함과 영향 관계를 구별해서 결론을 쓴다.

판단과학과 예술이 비슷해 보인다고 한쪽이 다른 쪽에 영향을 주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영향을 말하려면 시간 순서와 직접 기록(읽은 책, 편지, 인터뷰)이 필요하다. 그래도 같은 시대의 기술과 문제의식을 함께 나눈 흔적은 분명하며, 이것이 과학과 문화가 서로 얽혀 있다는 증거이다.

확인조건이 달라지면

한 학생이 “1912년에 그린 미래주의 그림은 일반 상대성 이론의 시공간 휘어짐을 표현했다”고 발표했다. 가장 알맞은 비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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