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 간 상호작용과 끓는점
본문휴대용 가스레인지의 연료인 뷰테인은 통 속에서 액체로 있다가 밸브를 열면 기체로 나온다. 양초의 주성분인 파라핀은 실온에서 고체이다. 둘 다 탄소와 수소만으로 된 무극성 분자인데, 분자의 크기에 따라 기체, 액체, 고체가 된다. 극성이 없어 전기적으로 끌어당길 까닭이 없어 보이는 분자들이 왜 뭉쳐 액체와 고체가 될까?
1.3.1세 가지 분자 간 힘
액체가 끓으려면 분자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이기고 떨어져 나가야 한다. 따라서 분자 사이의 힘이 셀수록 끓는점이 높다. 분자 사이의 힘에는 세 가지가 있다.
무극성 분자에서도 전자는 끊임없이 움직이므로, 어느 순간 전자가 한쪽에 조금 몰리면 잠깐 동안 극성이 생긴다. 이 순간적인 쌍극자가 이웃 분자의 전자를 밀거나 당겨 같은 방향의 쌍극자를 만들고, 둘이 서로 끌어당긴다. 이를 분산력이라 하며 모든 분자 사이에 작용한다. 그런데 분자가 클수록 전자가 많고 전자구름이 쉽게 일그러져 분산력이 세다. 극성 분자 사이에는 분산력에 더해 영구적인 쌍극자끼리 끌어당기는 쌍극자-쌍극자 힘이 작용한다. 그리고 F, O, N에 결합한 수소가 이웃 분자의 F, O, N과 끌어당기는 수소 결합은 이 둘보다 훨씬 세다.
분자량이 비슷하면 수소 결합 > 쌍극자-쌍극자 힘 > 분산력만 있는 경우의 순으로 끓는점이 높다. 같은 종류의 분자라면 분자량이 클수록, 분자끼리 맞닿는 면이 넓을수록 분산력이 커서 끓는점이 높다.
그림 1에서 탄소 수를 늘려 보자. 메테인(−162 °C)에서 옥테인(126 °C)까지 탄소 하나가 늘 때마다 끓는점이 대략 30~70 °C씩 오른다. 분산력만으로도 분자가 크면 액체와 고체가 된다.
1.3.2모양과 수소 결합의 효과
분자식이 같아도 모양이 다르면 끓는점이 다르다. 뷰테인(C₄H₁₀)은 사슬 모양이면 −0.5 °C에서, 가지 친 모양이면 −12 °C에서 끓는다. 가지 친 분자는 공처럼 둥글어 이웃 분자와 맞닿는 면이 좁기 때문이다. 한편 물(분자량 18)은 비슷한 크기의 메테인(16)보다 끓는점이 260 °C 넘게 높다. 물 분자 사이의 수소 결합 때문이다.1
1.3.3예제 풀이
16족 원소의 수소 화합물 H₂S(분자량 34), H₂Se(81), H₂Te(130)의 끓는점은 각각 −60 °C, −41 °C, −2 °C이다. 이 경향을 이어 그리면 H₂O(18)의 끓는점은 대략 몇 °C로 예상되는가? 실제 값 100 °C와 비교하여라.
H₂S에서 H₂Te까지는 분자량이 커질수록 분산력이 커져 끓는점이 오른다. 분자량이 47 늘 때 19 °C, 49 늘 때 39 °C 올랐으므로, 거꾸로 H₂S에서 분자량이 16 줄어든 H₂O는 −60 °C보다 더 낮은 −70~−80 °C 정도로 예상된다.
그런데 실제 물의 끓는점은 100 °C로, 예상보다 170 °C 이상 높다. 즉 이 차이가 물 분자 사이의 수소 결합이 하는 몫이다. 만약 물에 수소 결합이 없었다면 지구의 물은 모두 수증기로 있었을 것이고, 바다와 생명도 없었을 것이다.
아래 탐구 카드에서 끓는점 자료를 그래프로 그려 극성이 없는 분자도 서로 끌어당긴다는 것을 직접 확인해 보자.
- 도마뱀붙이가 유리 벽에 붙어 다니는 것도 분산력 덕분이다. 발바닥의 수억 개 미세한 털이 벽면과 아주 가까이 맞닿아, 하나하나는 약한 분산력이 모여 몸무게를 버틴다.
분자 사이에는 모든 분자에 작용하는 분산력, 극성 분자의 쌍극자-쌍극자 힘, 그리고 이보다 센 수소 결합이 있으며, 힘이 셀수록 끓는점이 높다. 분산력은 분자가 크고 맞닿는 면이 넓을수록 세다. 그래서 처음 질문의 무극성 분자도 순간적인 쌍극자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분산력으로 뭉치며, 분자가 클수록 기체에서 액체, 고체로 바뀐다.